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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_ 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호킴쓰 2012. 8. 23. 00:48

2010



 알랭 드 보통의 책은 어려운 것만 같다.

 예전에 '불안'이라는 책을 받아서 읽어보려다가 소설도 아닌 것이 너무 빡빡하셔서-

한 구석으로 저리 밀쳐두었던 기억이 난다.

 '공항에서 일주일을'도 집어들었다가, 아 어려울 것만 같은데 생각이 들었지만, 요즘 추리소설을 하도 많이 읽어 머리 속이 의심으로 가득 찬 상태이기도 했고... 거의 매 페이지마다 곁들어져있는 사진들을 보고나니 의욕이 더 불타올라 단숨에 읽어버렸다.

 읽고나서 그래도 괜히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구나 싶었다. 사진도 좋았고.

이 책은 말 그대로 공항에서 작가가 일주일을 체류하면서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한' 드 보통의 다이어리 그 자체이다.

 기내식을 누가 요리했는지에 대한 고찰부터, 수화물을 찾을 때의 우울함까지-

 공감이 되는 것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나름

 이 공항이란 시끌 벅적한 곳에서 일주일을 체류하며 이런 책을 한 권 낸 작가도 대단하지만, 절대 광고 효과로서의 고용이 아니라 공항에 대한 어떤 비판을 써도 좋으니 어디 한 번 써봐라 식으로 작가를 고용한 콜린 매튜스라는 사람의 관용이야말로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알랭 드 보통의 말을 빌리자면 "자신이 아끼는 개코원숭이 같은 인간이 보나마나 자기 도자기를 깰 것임을 알고 있고 또 그런 생각에 기뻐한다. 그런 관용이야말로 권력의 궁극적 증거이니까"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 것만 같다.

  우리 대부분은 치명적인 재난에 가까운 상황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야만 일상생활에서 좌절과 분노 때문에 인정하지 못했던 중요한 것들을 비로소 인정하게 되는 것 같다...그가 이 여행을 예약한 것은 아이들, 아내, 지중해, 스파나코피타, 아테네의 하늘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사람을 지치게 하는 다양한 수준의 공포, 불안, 제멋대로인 욕망에 사로잡힌 그 자신이라는 왜곡된 필터를 통해서 이 모든 것을 파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73p

  실제로는 그녀가 그런 슬픔을 느낄 만한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축하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 ....우리는 그녀가 함께 있지 못하면...꼭 죽고 말 것 같은 사람을 찾아냈다는 점이 부러웠을 것이다. 만일 그녀가 충분한 거리를 두고 자신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면, 지금이 자신의 인생에서 정점으로 꼽을 만한 시간임을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다.

-63p

  며칠 동안 여러 상점에 자주 들러보고 나서야 나는 공항에서 소비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무엇에 불만을 품었는지 조금씩 알 것 같았다. 문제의 중심에는 쇼핑과 비행 사이의 불일치가 있으며,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죽음 앞에서 존엄을 유지하고 싶은 욕망과 관련되어 있었다. 따라서 비행기를 타는 것은 우리 자신의 해체를 앞둔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가장 잘 보내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곤 한다. 어떤 생각을 하며 다시 땅에 떨어지고 싶은가. 면세점 가방들에 둘러싸인 채 영원을 맞이하고 싶은 것인가.

-113p

  그러나 수하물 찾는 곳은 공항의 감정적 클라이맥스의 서막일 뿐이다. 아무리 외롭고 고립된 사람이라도, 아무리 인류에게 비판적인 사람이라도, 월급을 줄 걱정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도, 도착했을 때 누군가 의미 있는 사람이 맞으러 나와주기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우리는 도착 라운지로 나아가면서 얼굴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 그러다가... 우리가 정말 이 행성에 혼자이며, 히드로 특급 열차를 타기 위해서 매표기 앞에 길게 서 있는 줄 외에는 달리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는 순간 어떤 망설임을 드러내지 않으려면 도대체 얼마 만큼의 위엄을 소유해야 하는가....

-18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