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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814 나 졸업해

호킴쓰 2013. 8. 14. 12:13


 오전 10:41

 2013학년도 후기 학위수여식 참석여부 지금 답문으로 알려주세요.


 평범한 수요일 오전, 나를 깨운 문자 한 통이다.

 

 나, 졸업한다. 군대 다녀온 사이에 변경된 약간의 학점 문제 때문에 후련한 마음 가지지 못한 채 학사정보만 들락날락 거리며 동기 조교의 전화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문자로 졸업 여부를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다.


 왜 실감을 못하냐고? 부모님께는 졸업식에 안 갈 것이라고 예진작에 말씀드렸고, 과 동기, 선 후배들 중에선 같이 졸업하는 친구가 없으니, 이 문자를 공유할 동기조차 나는 없는 것이다. 심지어 졸업작품은 반 년 전에 해치웠다.

 작은 자취방 안에서 잠이 덜 깬 채로 이런 문자를 받으니, 졸업작품을 하던 내 대학시절 최악의 시기가 떠오른다. 이 감정은, 그 시절 자주 느끼던 감정과 무척 흡사하다.

 

 졸업작품을 할 적에는 같이 작업을 할 남자가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여자 동기조차) 오로지 후배들 뿐이였다. 후배들과 사이가 안좋았다는 것이 아니다. 작업 간에 서로 으쌰으쌰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이야기해주고, 더 나은 부분을 칭찬해줄 상대가 없다는 것은 너무나 외로운 시간이였다. 처음 시도해보는 작업 방식에 책을 뒤지고 컴퓨터 프로그램의 바닷 속에서 허우적대느라 정신없던 나였지만, 그네들에게 부족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그저 별 내색없이 작업만을 했다.


 다른 과의 친한 친구들이 많았지만, 가끔은 그게 독이 되기도 했다. 그들은 같은 작업실을 썼고 좁은 방에서 열심히 작업을 하다가 뿌듯하게 작업을 마친 날이면 그 날 있었던 일을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부러워서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그 작업 시기는 만나던 여자친구와도 사이가 서먹해지던 시기였다. 서로의 작업에 지쳐있었고, 권태기와 해결 못한 감정들이 돌처럼 단단히 자리잡고 있었던 시기. 모든 주변의 상황이 도대체가 최악이던 시절. 다각도에서 쏟아지는 마이너스 적 감정들이 찌걱찌걱 쌓이고 또 쌓였었다. 그 때의 나는 피해의식에 덮여있는 괴물같은 모습이였을 것이라고 1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본다.


 그런 외로웠던 감정과는 별개로, 작업은 순조롭게 마쳤고 졸업 확정은 그 때 된것이나 마찬가지였다만 반 년이 넘게 지나니 그 감정도 무뎌지더라. 여튼간에 그 시절의 외로움은 아직도 생생하게 머릿 속에 박혀있다. 그 뒤로 닥쳐온 시절도 별 반 다르지 않았다. 예고되었던 이별과 정들었던 천안에서의 이사, 불안했던 장래 등등...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행복해도 너무 행복한 시절이지.

 

 상실의 시대에서 나가사와 선배는 얘기했다. '자신을 동정하는 것은 비겁한 인간들이나 하는 것이야.' 라고.

 

 비겁하단 소리를 들어도 별 상관없다.

 

 나는 여전히, 그 때의 내가 조금 짠하다.





p.s. 그래도 축하해주신 트위터 친구 여러분. 고마워요. 덕분에 덜 외로워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