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 냄새가 가진 힘은 정말 굉장하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이 있는데 그 중 으뜸은 후각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덤덤한 일상 생활 속에서 나에게 의미있는 향을 맡으면, 순식간에 그 향을 맡았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만 같달까.
지금 생각나는 몇 가지를 써보자면 -
쑥 된장국의 향은 나를 순식간에 광주의 여느 주택에 살던 시절로 데려가준다. 편식이 무척 심했던 시절이였는데, 모든 된장국을 가렸건만 유일하게 먹었던 된장국이 쑥 된장국이였다. 그래선지 더 특별한 그 향은, 밥을 잔뜩 말아 그릇에 덜어가며 야물차게 먹는 내 모습을 옆에서 훈훈하게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도 선물해준다.
향수 류도 있다. 중학교 때부터 향수를 썼는데 남들과 다르고파서 분에 안맞게 이것 저것 향수를 샀었다.
폴로 스포츠 로션의 상쾌한 향은 고1 등교길 자주 들르던 등나무 벤치 밑으로. 돌체 앤 가바나 라이트 블루 향은 고2~3 때 남들 안쓰는 향수 쓴다며 괜히 생색내던 시절로. 불가리는 대학교 1학년 2학기 때 좋아하던 선배가 쓴 향을 찾아 향수 매장을 뒤지던 시절로. 키엘 오리지날 머스크는 생각치도 못했던 기념일 날, 선물로 받아서 평소보다 과하게 뿌렸음에도 행복했던 시절로...
타임머신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생생한 기억들을 선물해주는 향들.
이 얘기를 지금 왜 쓰냐면, 집에 오는 길에 모기향 냄새에 대한 기억이 리뉴얼 되었단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원래 태우는 모기향은 아빠와 동생과 함께 갔던 시골집 마당에서 캠핑을 하던 때를 떠오르게 했었다. 10살 때 즈음이였는데 그 시절이 진하게 떠오르는 이유는 첫 캠핑이였거니와, 그 날 이후 우리집에서 쓰는 모기향이, 파랑색 네모난 모기향으로 바뀌었기 때문. 나름 예쁜 추억이었는데, 하나의 강한 체험이 이 추억을 넘어뜨려버렸다. 바로 군대.
뿌리는 모기향도 쓰지만, 거진 태우는 모기향을 썼던 그 시절. 나는 한참 '우리가 모르는 상식' 이런 것에 빠져있었는데, 그 책에서 "태우는 모기향은 담배보다 10배 이상 해롭습니다." 라는 글을 본 후, 모두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몰래 모기향에 물을 부어 불을 꺼버리는 일을 매일 했었다. 아침이면 선임들이 "어떤 새끼가 모기향 껐어?" 라는 고함을 지르곤 했었는데, 그럴때면 속으로 "내가 너네 생각해서 불 끈거야" 하고 속으로 뿌듯해했었지. 암튼 전역 후는 태우는 모기향을 맡을 때마다 이 때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곤 했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완전히 새로운 추억으로 또 바뀌었다.
바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의림지라는 호수 옆에서 친구들과 술 한잔을 기울이던 기억으로.
만난지 1년이 넘어가서 얼굴도 약간 흐릿해져가던 수경이와 제천에서 정말 우연히 만나서 급작스럽게 만들어진 술자리였는데, 호수 옆이기에 모기 물리는 것을 대비해 모기향을 잔뜩(불어오는 바람을 고려하여 3개나!) 태웠었다. 그러고선 호수 옆 바닥에 침낭과 돋자리를 깔고, 미치도록 달콤한 화이트 와인과 버니니, 그리고 맥주를 섞어마셨다. 심지어 안주는 각종 치즈에 견과류... 맥주를 나눠마실 친구만 만들어도 정말 행복하겠다, 싶은 마음으로 떠났던 나홀로 제천 여행이였는데 이게 왠 부르주아 코스람! 하면서, 웃고 또 웃으며.
우연히 수경이를 만난 것(그것도 새벽1시에 길을 걷는 나를 불러세움)도 놀라 까무러칠 것만 같았는데, 같이 온 수경이 친구와 내가 취향이 너무나 비슷해서 또 한 번 놀랐고, 이 외진 곳까지 오면서 캠핑 도구와 와인에 샴페인 잔까지 챙겨온 그네들에게 또 놀랐었더랬다. 서울에선 정말 상상도 못할 일들이 겹치고 또 겹쳐 일어나서, 우리는 대화가 멈출 적이면 '이건 꿈이야..'라는 말을, 지치도록 반복했었다.
그런 꿈 같은 기억을 선물해준 제천에서 돌아온지 벌써 이틀째.
휴가를 다녀와서 일상에 복귀 못하는 이들을 보며, 뭐 저렇게 유난들일까? 라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그 중 가장 유난을 떨어대는 주인공이 내가 되어버렸다. 한참을 멍하게 있는 것은 다반사, 작업을 하다가 지칠 때면 청풍호수에서 들었던 노래를 들으며 그 날을 그리워했다. 게다가 오늘은 일터에서 휴가 복귀 신고식인 것 마냥 예의없는 손님 융단폭격을 맞고 정신적, 육체적 체력이 모두 바닥을 드러냈었다.
그렇게 지친 몸으로 터덜터덜 집에 돌아오던 길,
집 근처 주택가에서 피어나오는 모기향을 맡는 순간, 그 날, 그 시간의 의림지로 날아가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선 순식간에 흐뭇해하는 내 모습을 보고, 한참을 웃다가 이렇게 일기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