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봤습니다/공연을

거짓말게임

 



평소에 좋아하던 트위터 지인인 김 수님(@directorsoo)의 연극, '거짓말 게임'을 보고왔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제대로 본 것은, 대학교 1학년 시절 교양과목 탓에 억지로 본 1편을 제외하면 이번 거짓말게임이 처음이였다. 대화는 많이 못해보았지만, 수 님의 글이 평소에 원체 좋았었기에 마음을 먹고 다녀왔다.

 학생 연극은, 대학 시절 연극과 친구들 탓에 너댓번 보았었는데 그 때마다 생각했던, 영화보다 연극이 더 대단하게 생각되는 점이 몇 개 있다. 영화는 감독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다양한 앵글과 색감, cg를 통해 좀 더 편하게(?) 전달할 수 있지만, 연극은 조그마한 무대를 여러 각도의 관객들이 바라보기에 연출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주변환경의 영향과 배우들의 컨디션 등 여러가지가 공연의 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연극을 볼 때마다 이것 참 대단하구나... 싶었다. 그래서인지 대학 시절 때도 한 번씩 연극을 보고난 후면 공연의 에너지를 함빡 맞는 기분이 들어 작업할 힘이 나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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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말 게임이 좋았던 이유는 '힐링'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너도나도 힐링을 외치는 시대, 솔직히 질릴 때도 되었건만, 사람들은 아직도 지치지않고 힐링과 멘토를 부르짖는다. 힐링에 힐 자만 나와도 그 사람이 약해보이는 것은, 내가 예민해서일까? 싶을 정도로 지겨웠었는데, 이  연극이 '힐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서 참 좋았다.


 리플렛에 나왔던 김 수님의 말 중 가장 좋았던 몇 문장을 옮겨본다.


 "상처가 없는 것인 양 덮어두는 부드러운 언어나, 속살을 헤집어내 소금을 뿌리는 독설은 짧은 안정과 쾌감을 줄지 모르나 근본적인 치유법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쉬운 길을 찾지만, 결국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자신의 마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자아를 들여다보는 것, 특히 상처받은 마음과 마주하는 것은 자전거를 배우는 행위와 비슷하다. 처음 자전거를 탈 때는 뒤에서 잡아주는 누군가의 굳건한 손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어느 순간 오직 자신의 두 발에 의해 전진하게 된다."


 옮기고 나니, 몇 문장이 아니라 거의 다 옮겨와 버렸다.. ^^; 그만큼 마음에 와닿았던 문구.

 


 극을 간추리자면, 상처받은 두 주인공이 한 명은 환자로, 한 명은 치료사로 만나 서로의 상처를 이야기하고 치료해간다는 내용이다. 줄여내는 말은 이렇게 쉽지만 각자의 트라우마에 젖어, 불면과 악몽, 그리고 불신에 시달리는 주인공들의 상처가 90분이라는 공연 시간 동안 어떻게 자연스럽게 풀어질까? 생각에 걱정 반 기대 반이였었다.



 그랬건만 진실게임의 반대격 게임이자 이 연극의 제목 '거짓말 게임'이 아주 자연스럽게 극을 이끌어 나가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되었다.


 '거짓말 게임'. 말 그대로 질문자는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답하는 자는 거짓말로 답하는 게임이다. 사실 '진실게임'이라는 것을 할 때도 대답하기 난감할 때는 누구나 거짓말을 하지 않던가. 대답하기 힘든 사연을 '거짓말'이라는 전제 하에 솔직히 풀어놓는 이 게임은, 진심을 고백하기에 참 좋은 게임이지 싶었다.

 물론 아무리 '거짓말 게임'이라는 게임이, 숨겨진 트라우마를 고백하기에 좋다지만 극의 흐름이 어색했더라면 실망을 했었을텐데, 게임까지 다가가는 흐름과 연출이 좋았기에 극 중 유리와 택수가 거짓말 게임으로 서로의 상처를 고백할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게 되더라. 또 주인공들의 직업이 화면을 통해 진실을 얘기하는 다큐멘터리 PD이고, 환자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치료사였기에, 이 회복법이 더 와닿았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상처의 무게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마음 속의 응어리는 자주 만져주고 뱉어내야 풀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힐링을 이야기하는 자, 그러니까 멘토의 사회적 지위를 빌어 내뱉는 힐링(마법사인가?)과 독설에 기대어 자신의 상처를 묻어버리거나 짓밟고 나아가는 요즈음의 회복법보다는, 고백과 성찰을 통해 개개인이 마주하고 이겨내는 힐링이 진짜 치유이지 않을까. 그저 막연하게 힐링과 멘토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였는데, 연극을 통해 내 생각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공연을 마치고 이 '거짓말 게임' 이라는 게임이 실제로 있는 것인지 너무너무 궁금했었는데, 마침 수 님을 만나 여쭤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버스정류장'이라는 영화에도 이 게임과 비슷한 게임이 나오긴 하지만 이 연극의 거짓말 게임은 수 님이 직접 상상하신 것이라고 :) 


 이제 막을 내려버렸기에 주변 지인들에게 소개를 못하게 되어 참 아쉬운 공연이다. (왠지 앵콜 공연 할 것 같은 개인적인 느낌이 있다. :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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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수를 연기한 김준삼 님과 유리를 연기한 정혜영 님 모두 좋았지만 두 주연보다, 여고생과 불륜녀를 연기한 최배영이라는 배우가 인상에 깊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