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봤습니다/책을

오랜만의 하루키 장편, 반가워요. 쓰쿠루.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얼마만에 만나는 하루키인가. 평론가의 반응과 독자의 반응이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작가에서 영예롭게 1위를 차지한다는 그. 하지만 나에겐 그래도, 하루키다. 20년을 살았던 고향에서 떠나가 낯선 도시에서 적응했어야만 했고, 3년 여를 만났던 여자친구와 헤어짐마저 겹쳐서 골골대던 괴로웠던 시절 2007년, 그리고 군대 가기 전 뭘해야할지 몰라서 방황하던 2008년을 함께 해줬던 그의 책들.

 

 여러 권에 달아던 초반의 장편 소설을 제하고는 다 소장마저 하고있을 정도로 좋아했던 그였는데, 솔직히 얼마 전 나왔던 잡문집은 도저히 손에 안잡혔더랬다. 내가 읽었던 기사에서는 '그는 장편보다 단편, 그리고 단편보다 에세이지' 라고 말했다던데. 난 다르더라고.

 여튼, 그 실망감 이 후 너무도 오랜만에 만난 장편소설이여서, 기다리는 마음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책방에 달려가서 샀다. 책값은 아끼지말라던 부모님의 충고에 따라, 가지고있던 카드로도 살 수 있었고 인터넷으로도 살 수 있었지만, 내 돈으로 샀어야만 했다.



*



 제목조차 외우기 힘든 이번 장편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초반, 친구들에게 버림을 받고 죽음만을 생각했다던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2013년 올해 초를 떠올렸다. 매번 비슷한 패턴의 주인공 - 규칙적이며 다림질을 사랑하고, 청결한 - 에 약간 지루할 뻔도 했지만, 완벽했던 친구들을 잃고 죽음만을 생각했다던 쓰쿠루의 이야기가 왠지 남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았기에 실망감을 넘어서 몰입할 수 있었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친구와 이별을 겪고, 2007년과 마찬가지로 낯선 도시로 옮겨왔던 올 해의 초. 죽음까진 생각하진 않았지만, 쳇바퀴를 돌 듯이 일상을 지내왔고 틈만 나면 반짝반짝 빛났던 2011~2012년도를 그리워하고, 또 원망했었다. 거의 매일같이 술을 마셨고 -물론 일 때문도 있었지만 - 친구들에게 나의 한탄을 털어놓곤 했었다. 친구들은 나의 그런 모습에 지쳐서 그만 좀 하라고 많은 핀잔을 주기도 했었는데, 쉽지 않았었다. 뭐 어쨌건 그 시절을 지나고 나니 나 역시도 쓰쿠루처럼 체형이 완전히 변해있었던 것이였다. 바지 치수는 두 개가 내려갔고, 상상 속에서만 입었던 옷을 걸칠 수도 있게 되었었다.


 조금씩 징조는 있었지만 대비하지 못한 갑작스런 이별에, 나 역시 초반의 쓰쿠루처럼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돌을 차곡차곡 세우고 있었다. 많이 미숙했지만 온 마음을 쏟았어도, 이렇게 쉽게 남남이 될 수 있구나. 2007년의 고통을, 나는 또 다시 반복하고 있네. 이건 나의 잘못인거지. 남들은 그리도 쉽게 떨구어내는데. 등등의 생각을 하며, '다음의 만남에는 나를 보여주지 않겠어. 최소한의 감정만을 드러내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겠어'라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다짐했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 후로 만나는 사람들은 다들 눈치를 챈 것인지, 새로운 만남은 잦았지만 진지하게 연결되는 관계는 하나도 없었다. 책 중의 사라처럼, 순례를 떠나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이 시도들에 지친 나를 다시 흔들어준 것은 내가 좋아하는 임경선 님의 책 중 한 구절이였다.


 사랑이 어떤 형태로든 가시적인 결실을 가져다줄 수 없음을 그녀들은 어느 순간부터 눈치채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운명을 느끼게 하는 그 충만한 순간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깊은 흔적을 만들어놓고 갔다면 '그것으로 된 거다'라는 자연스러운 체념이 슬픔을 대신했다.


 (연애든 친구든 일이든) 더한 각오는 커녕, 움츠러들고 가면을 쓴 마음을 가지고 이런 충만한 순간을 얻으려던 내 마음이 굉장히 부끄러워지던 순간이였다. 욕심 많던 시절을 돌이키고 이제부터라도 온 마음을 쏟아보자 라고 다짐해가고 있던 도중, 이제 또 쓰쿠루의 순례를 만났다. 쓰쿠루처럼, 나 역시 '주변의 친구들에 비해 색채가 부족한 것 같아. 친구들은 내 정체를 알면, 다 떠나가버릴거야' 라고 잦게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였다. 자신의 이름에 색깔이 없다는 것에 얽매여, 또 다른 의미 '만들다'를 잊어버렸던 쓰쿠루처럼, 남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있던 내 모습을 잊고있었던 것은 아니였는지.

 

 쓰쿠루가 자신에게 했던 말, 마지막 그 구절을 나 역시도 읊어본다.

 

 지금 자신이 내줄 수 있는 것을, 그것이 무엇이든, 몽땅 내밀자. 깊은 숲에서 길을 잃고 나쁜 난쟁이들에게 붙잡히기 전에.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어."...

 "우리는 그때 뭔가를 강하게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딘가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아"


 어떤 일이든 간에 강하게 믿고 그것을 믿는 내 자신은, 절대로 사라지지않는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하루키. 불안한 시절, 또 한 번 위로를 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전해질린 없지만 저 멀리 한국에서 이렇게 적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