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봤습니다/영화를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보았다.

예전에 다른 나라에서를 광주극장에서 봤었는데, 너무나 적은 관객 속에서 혼자만 깔깔 웃으면서 봤었더랬다. 유준상의 뻔뻔함과 능청스러움, 문성근의 찌질한 집착을 보면서 혼자 깔깔깔. 이 포인트에서 웃는 내가 이상한걸까 싶었는데, 이번에 상상마당에선 꽉 찬 영화관에서 영화를 봐서인지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다들 함께 웃는 그 기분이란. 나는 홍상수 감독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영활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일거야 라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역시나! 다들 영화관 매너가 너무 좋았다. 휴대폰을 켜대는 사람도 없는 듯 했고, 와작와작 과자를 먹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친구가 올린 포스터 한 장


 이 포스터 한 장에 반하고, 제목에 반해서 몇 달을 기다렸는지. 아 정은채. 너무너무 예쁘다.

 내가 연예인이나 배우들에게 별 애정을 못갖는 사람이라는 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 '얘들아 나 이제 정은채의 빠돌이가 되기로 하였어!' 라고 영화보고 오만대다가 자랑을 하고다녔다.

 그런데! 그렇게 기다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늦장을 피우다가 십 분 정도 영화관에 늦게 입장하고 말았다. 제인 버킨이 나왔다는 초반 10분은 그렇게 날려버리고...


 여느 홍상수 영화처럼 영화는 해원의 일기장 기록에서 시작되는 듯 하다. 나는 해원과 엄마가 길을 걷는 부분부터 보았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라는 제목을 보고 나는 해원이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변하는 가에 초점을 두고 영화를 보았다. 어머니 앞에서의 해원, 이 감독 앞에서의 해원, 낯선 교수 앞에서의 해원, 친한 언니 앞에서의 해원 ...  그 중 엄마 앞에서의 해원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떠나는 엄마를 바라보며 울컥하는 말을 삼키는 정은채의 연기와 엄마와 공원에서의 일상 대화를 보며 감탄을 했다.
 이 감독 앞에서의 해원 역시 사랑스러웠다. 불륜 관계의 그 오묘한 흐름이랄까? 무척 자연스러운 연기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친한 친구 앞에서의 해원도 사랑스러웠구나. 안 사랑스러운 장면이 없었네..^^;;

 영화 속 친구들과 유준상, 예지원의 대화를 보며 한국 사회에 적응을 못하는 해원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을 해보았다. 한국 사람 특유의 오지랖과 그룹에 편승하지 못하는 남을 깎아내리는 모습, 남녀관계에서 유독 돌출되는 가부장적 모습-나는 되지만 너는 안돼! - 등을 적응해나가지 못하면, 한국에 적응을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일까? 이번 영화 속에서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다 아이같았다. 해원이 가장 성숙해보였던 것 같아.

 이선균의 찌질함과 꼰대스러운 연기, 유준상의 능청 연기도 어떤 경지에 이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상수는 이번에 이선균을 아주 병신 만들기로 작정했구나! 라고 생각하며 정말 많이 웃었다. 더 사랑한다는 것이 마치 권력이라도 되는 것마냥 행동하는 이선균의 모습을 보며 지나간 나의 모습이 떠올라 씁쓸하기도 했다만...

 예전 처음 홍상수 영화를 봤을 땐 특유의 어색한 대화들이 싫었다. 늦게서야 대본이 없이 촬영을 해서
 그렇다는 걸 알았지만. 요번 영화에선 그러한 어색함들이 난 너무나 좋았다. 합이 자연스러운 대화도 좋을 때가 있지만 홍상수 영화처럼 일상이 묻어나는 영화들은 이러한 어색한 자연스러움(?)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여튼 이번 영화는 참 한국적인 색깔이 뚝뚝 묻어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모르는 사람은 이상한 줄 절대 모르는 한국적 코드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해원의 모습, 너무너무 좋았다.


 * 매번 영화 속에서 영화학과 교수가 된 주인공의 상황을 난처하게 만드는 술자리 씬이 있는 홍상수. 어떤 사연이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 궁금해졌다.

** 해원이 다른 남자를 만날 때마다 꽁초를 지긋이 밟는 씬이 있다. 그 씬을 여러 번 넣은 것을 보며, 한국 사회의 어떤 돌출된 남성의 모습을 담배 꽁초에 비유하고, 밟아버린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면, 조금 오버일까?

*** 홍상수 영화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인물이나 오브제를 통해 시간의 흐름이 엉키는 부분이라고 말하겠다. 다른 나라에서는 우산이 그 오브제였고, 이번 영화에서는 막걸리를 마시는 아저씨였다. 
 그러한 씬만 보면 난 소름이 돋을만큼 좋더라!

**** 내가 이번 영화를 재밌게 봤던 이유가 두 개 있을 것 같다. 하나는 해원이 대학생이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지금 바텐더를 하고있다는 것. 바텐더를 하면서 종종 아 저 커플은 무조건 불륜이다 싶은 커플을 보게된다. 바텐더의 입장에서 그네들은 손님이고, 나의 임무는 그들을 최대한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도덕적인 관점 따윈 일을 할 때 방해가 될 뿐이기에. 그래서 해원과 이 감독이 마치 내 손님이 된 것 같았다. 얼마나 힘들겠어 본인들도. 나까지 말도 안되는 오지랖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진 말아야지 하고 봐서, 더 재밌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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