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봤습니다/영화를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


최근 가족 영화를 연속해서 3편을 보았다.
요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흥행몰이 중인 웨스 앤더슨 감독의 <다즐링 주식회사>와 <로얄 테넌바움>, 그리고 영화관에서 개봉 중인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 이렇게 세 편. 

웨스 앤더슨이 삐뚤어지고 망가진 가족들의 사이를 유머와 어여쁜 미장센으로 표현하고, 결말에 가서는 나름의 해피엔딩을 선사하는 식이라면,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은 웃음기를 쫙 빼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 주고받는 상처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따뜻한 가족영화를 기대하고 들어갔다간 중간에 영화관을 박차고 나오게 될지도.. 

동화같은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보았을 때 쌓은 긍정에너지를 오늘 어거스트를 봄으로써 다 써버린 기분이 들었다. 너덜너덜.

낭만적인 가족의 화합보다, 현실적이고 리얼한 가족 싸움이 보고싶은 분들께 추천. 성격이 다 다른 캐릭터들이 부딛혀서 어우러지는 합이 자연스러워서, 막장인 스토리가 재밌게 느껴졌다. 

웨스 앤더슨 영화 이야기는 다음으로 넘기고-. 이 포스팅으로 내 팬심을 표현하기엔 모자람

어거스트 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씬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장례식을 마치고 어머니와의 한 바탕 한 자매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던 장면. 영화 전반에선 존재감 없던 둘째가 이제 곧 이곳을 떠날거라며 비밀을 폭로하고 툭툭 던지던 대사에선 진심이 묻어나오더라.


'가족? 남과 같이 지낸 세월이 얼만데. 나에겐 남과 같아! 단지 세포 조금 공유한 사이일 뿐이지.’ (딕션은 정확하지 않음)


잘 나가는 언니들이 도시로 떠나 각자의 삶을 살기 바쁠 때, 외진 시골에서 신경질적인 어머니의 병 수발을 들으며 이곳에서 떠날 수는 있을까 전전긍긍하던 찰나 자궁암까지 덜컥 걸려버린 그녀를 구원해줄 사람은 다름아닌 사촌인 컴버배치. 지쳐가던 삶에서 구원해준 남자가 있는데, 그가 사촌이라는 것이 그녀에게 뭐가 중요할까? 집을 나간 후로 연락조차 거의 없던 그녀들이, 자매라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삶에 간섭할 때 그녀가 귓등으로도 안듣고 흥분하던 것이 이해가 갔다.

외진 시골에서 사람들과 교류없이 지내는 삶이란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그렇게까지 그들을(아버지는 자살, 어머니는 심한 독설가, 둘째는 사촌과 사랑) 피폐하게 만든 것일까. 


두번째로 인상깊었던 씬은 메릴 스트립과 줄리아 로버츠가 식탁에서 말싸움 주고받는 장면이였는데.. 그 장면 볼 땐 너무 리얼하고 열이 받아서 영화관에서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였다. 세상에서 제일 속터지는 게 가족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 유명한 배우들이 서로 합을 주고받는데.. 에너지가 너무 쎄서 기가죽을 지경ㅋㅋ 요새 잘 나가는 베네딕트 컴버배치도 쭉 찌그러져있다가 존재감 확 터트리는데... 찐따 연기 잘하더라..


음 영화를 보고 걸어나오면서, 때로는 피를 나눈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더욱 상처주는 말과 행동을 쉽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이켜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P.S.1 : 10번은 족히 본 영화 노팅힐에서 너무나 사랑스러웠던 줄리아 로버츠를 생각하다가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만나서 초반 충격이 너무 컸다. 그렇게 사랑스럽던 그녀는 온데간데 없고 앙칼지고 세월에 지친 모습을 너무 완벽히 연기해서… 


P.S.2 : 메릴 스트립은 진짜 미친 여자 같았다.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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