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봤습니다/영화를

만신



오늘 만신을 보았다.

 솔직히 얘기해보자면, 사주나 굿, 무속신앙, 종교 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부모님이 사주를 본다거나 용한 무당이 있다고 같이 가보자고 얘기하시던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괜한 역정을 내곤 했던 나였다.  이런 나이지만 마음 한 구석엔,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 - 무당의 삶에 대해선 호기심이 있었기에, '만신'(만신은 무당을 높여부르는 호칭이라고 함)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는 소식에 귀가 솔깃하긴 했다. 하지만 정말 보고싶던 영화도 잘 놓치던 나... 이런 몸뚱아리 무거운 나를 번쩍 일으킨 것은 '만신' 예고편에서 본 문소리와 김새론의 눈빛, 그리고 가수 백현진이 영화 ost로 부른 ‘파경’을 들은 순간이였다.
 
 영화를 보고 나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무속신앙을 싫어한다고 얘기했던 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언제부터 그런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건지 기억이 잘 나지않는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의 나는, 무속신앙을 우리의 전통 문화의 한 모습이라곤 전혀 생각치 못했고 비과학적이며 왠지 무섭다는 이유만으로 외면하고, 진심을 다해 믿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해보려고 노력조차 해보지 않은 채 무시하고 있었다. 크게 반성했다.
 기독교나 불교, 천주교를 믿는 것도 아니지만, 은연중에 우리의 무속신앙을, 앞의 세 종교보다 무시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생각은, 언제부터 하게 되었던건지 궁금해지더라.

*

 미디어에 나오는, 이제는 인간문화제가 된 김금화 만신을 보며, 흘러나오던 나레이션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미디어가 김금화 만신을 이용하는 것일까, 아니면 김금화 만신이 미디어를 굿의 도구로써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
 
 박찬욱 감독의 친동생이라는 박찬경 감독은 미술감독 출신이라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에서도 인상깊고 감각적이였던 장면이 많았다. 김금화 만신이 중년이 되었을 무렵, 한 할아버지가 개울가에 빠지는 장면이 플래시백처럼 엉켜나오는 장면이 있었다. 그 때의 문소리 표정과 목소리, 그리고 감각적 연출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또 정부의 단속을 피해 산기슭로 도망쳐 간 김금화 만신이, 지친 동료들과 함께 흥겨운 굿판을 여는 장면, 개신교 신자들이 무속신앙을 비난하며 악귀여 물러가라! 라고 외치자, 되려 귀신들을 불러대던 장면, 바위가 무성한 바닷가에서 미역이 얽힌 고무신을 줍던 어린 김금화 만신, 도망가버린 김금화 만신의 뒤를 쫒던 경찰이, 멀리 사라져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던진 새빨간 무당 모자, 바다 위를 휘날리던 빠알간 모자...등
 
 김금화 만신의 아역 역할을 맡은 김새론이 후반에서 쇠걸림(헌 쇠를 받아 새 쇠-무당의 도구들-를 만든다는 의식)이라는 의식을 행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못 쓰는 수저나 그릇 뿐만 아니라 총탄, 권총 등을 받아드는 김새론과 그런 김새론을 바라보는 김금화 만신의 표정을 보았을 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굿판을 보러가서 흥겹게 놀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 해 안에 꼭 구경해보고 싶다.

p.s.1
 
영화를 보다가 사알짝 아쉬웠던 점이 있었다. 여러 신들에게 둘러쌓인 김금화 만신을 내려다보는 씬이 하나 있었는데, 호랑이 신의 모습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아니라 정면 모습이였다는 것 정도..^^? 그 장면을 보고 자꾸 생각이 나서 5분 간은 집중이 안되었던 것 같다.
 
p.s.2


김새론은 정말 앞날이 기대되는 배우다. 문소리는 진짜 최고다. 


p.s.3


컷아웃 애니메이션으로 흘러나오는 탱화들을 보며, 옛날 생각을 했다.

군대에 있을 시절, 신병교육대 불교 군종병을 겸했던 나는 법사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나보고 탱화를 배워볼 생각은 없냐고 물어보곤 했었다. 돈을 아주 잘 번다는 말과 더불어, 5년 이상은 무보수로 뼈가 빠지게 배워야한다는 말도 곁들이셨었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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